if you leave me now

갑자기 듣는 심수봉 노래 같은 것이 너무 좋을 때가 있는 것처럼
미국인들에게도 이 노래가 그런 의미일까.
아이팟 휠을 돌리다가 우연히 다시 듣게 된 오늘 아침부터 줄곧 입 속에서 맴맴.



영화도 참 괜찮았었다. 별다른 이유없이 자꾸 보게 되는, ost가 좋았던 영화였는데.
둘이 함께 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문득 생각나 급하게 포스팅.

If you leave me now
You'll take away the biggest part of me
Ooh, no Baby, please don't go

And if you leave me now
You'll take away the very heart of me
Ooh, no Baby, please don't go
Ooh, girl I just want you to stay

A love like ours is love that's hard to find
How could we let it slip away?
We've come too far to leave it all behind
How could we end it all this way?
When tomorrow comes
Then we'll both regret the things we said today

If you leave me now
You'll take away the biggest part of me
Ooh, no Baby, please don't go
Ooh, girl I've just got to have you by my side
Ooh, no Baby, please don't go
Ooh, mama I've just got to have your loving


설운 서른



김종길 외, 출판사 버티고


이제는 차라리 빨리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어버렸으면 싶은 조급한 아홉의 시간에 이보다 적당한 제목이 어디있을까. 다들 겪을 거고, 겪고 있고, 겪어낸 일이구나 하면서, 투명인간 동지들이 주변에서 어깨를 툭툭 치는 듯한 기분에 집어들고 계산대로 갔다. 아직은 변하는 모든 것이 지리할 만큼 슬프고 화나는 스물아홉의 내가, 서른으로 들어서면 조금 관대해질 수 있기를 하는 바람과 함께.

표지 디자인도 굉장히 마음에 들고 세로쓰기로 되어있는 서체도 아름답다. 세로쓰기가 된 이유는 시어들을 천천히 읊어주시라 하는 의도라 하는데, 처음에는 좀 낯설었지만 하나 둘 책장을 넘기다보니 금세 익숙해졌다.

시는 아닌데 시집의 마지막 편을 장식하는 전 씨네21 편집장 조선희씨의 글을 여기 옮긴다. 이 글을 읽으면 시집의 기획의도를 정확히 알 수 있다.



좋은 나이 마흔

스물은 좋은 나이다. 김지하 세대가 4.19 격문을 쓴 나이고, 청계천의 청년노동자 전태일이 근로기준법 책을 손에 든 채 분신한 것도 스물 남짓이었다. 대한민국의 수많은 십대들이 입시강박과 공부 고문에서 벗어나 마침내 합법적으로 자유를 쟁취하는 바로 그 나이이기도 하다. 이제, 바야흐로 한 인간이 세상에 나오고, 그가 이론과 실재, 꿈과 현실의 명확한 구분을 받아들기기까지, 그가 바깥세상과 섞이고 부딪치면서 일으키는 마찰열은 간혹 혁명이 되기도 하고 시가 되기도 하고 록이 되기도 한다. 청춘 예찬의 숱한 글과 노래와 영화가 있을 법한 것이다.

그런가 하면, 서른은 서성거려지는 나이다. 만개한 꽃이 막 지려 할 때의 안타까움이라고 할까? 그저 잔치가 끝났다고 이야기할 수만은 없는 양가적 가치가 그 나이에 걸려 있다. 정박하려는 욕망과 떠나려는 욕망. 잉게보르크 바하만의 철학적 소설 <삼십세>는 바로 그것을 이야기했다. 모든 묵은 것들에 퇴거를 신고하고 익명의 풍요로운 도시 로마를 향해 여행을 떠나느냐, 아니면 세상에 대해 겸허해져서 하나의 의무를 찾고 봉사를 자청한 나머지 한 그루의 나무를 심거나 어린애를 만드느냐, 하고 말이다. 그러나 대개의 사람들은 한 뼘의 땅에 뿌리내리는 선택을 할 것이고, 그래서 시인 강은교는 그 나이를 '새장 문을 열어줘도 더 이상 날아가지 못하는 새'에 비유했다. 그 나이에 기형도 같은 시인은 매일같이 죽음을 음유하다가 어느 날 파고다극장 객석에 앉은 채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대체로 서른을 넘기면서 사람들이 나이에 무덤덤해지고 마음에 평안을 얻는다는 것이다. 그건 한 뼘의 땅과 가족의 울타리에 정착한 것에 대한 보상일 수도 있겠으나, 꼭 그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 그건 삶에서 만고불변의 유일한 진실인 무상(無常), 즉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는 것을 깨달은 데서 오는 여유일 수도 있다. 나이는 곧 시간이고, 시간은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는 걸 인정하고 나면, 시간의 흐름을 즐기고 자신의 변화를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서글픈 서른으로부터 10년이 흐른 뒤에도, 기형도 이후 10년을 더 살고 나서도, 마흔이라는 생소한 나이를 편안한 마음으로 맞게 되는지도 모른다. 그건 자신의 삶을 정직하게 마주보는 것이기도 하고, 정착과 떠남의 이분법을 넘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 나이는, 박완서가 오랜 부엌살림의 저 깊은 밑바닥에 저장해 두었던 전쟁의 기억과 가족을 읽은 상처들을 길어올려 문학창작의 대장정에 나선 바로 그 나이이기도 하다.

조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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